본문 바로가기

측정 인사이드/멤버 인터뷰

소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 ‘음향클럽’



 

소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 ‘음향클럽’

소음 저감·차단 기술 음풍경 디자인 등 축적된 연구결과를 보급하는데 앞장선다

소리를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행위는 주관적이다. 헤비메탈이나 락처럼 비교적 소리가 큰 음악은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듣기 좋은 소리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고통스런 소음에 불과하다. 심지어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던 작은 소리조차 본인의 몸 상태에 따라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소음이라고 정의하지만 상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소음 기준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공장·공사장·도로·철도·자동차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소음·진동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고 적정하게 관리하기 위한 규제기준인 소음·진동관리법이 그것이다. 기준에 적합하지 않을 때 배출시설 등에 대한 개선·대체, 기타 조치를 취할 수 있고 개선명령을 위반하거나 이행할 수 없을 때에는 조업정지·이전·허가취소·폐쇄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래도 생활 소음이 가장 큰 이슈가 된다. 최근 동부간선도로 확장공사를 진행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방음벽 개량 문제를 들고 일어났다. 주민들은 소음기준을 20년째 초과하고 있었던 현실에 불만을 터트리며 확장 시 소음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터널형 방음벽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설계도상으로 보면 방음벽 형태가 들쭉날쭉한데다가 현재의 방음벽은 7층 이상에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또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이웃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리는 경우도 간간히 있고 집회나 시위 때 확성기 소음으로 주변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공장 내 소음으로 작업자들에게 난청이 발생하는 사례에서처럼 일터에서의 소음 역시 쉽사리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소리나 소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관련 기준을 규정함으로써 국민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는 방법은 없을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음향 클럽은 소리나 소음과 관련된 과학자, 전문가들이 모인 측정클럽이다. 주로 소음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현재 20여명의 회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 전문가 집단은 그동안 국제표준규격과 기관 간 측정방법, 측정 불확도 모델 등을 공유하면서 클럽 활동 기반을 다져왔다. 2010년부터는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면서 소음 저감방법을 제시하는 현장의 실무담당자들(소음진동기술사)까지로 범위를 넓혀 그동안 축적해온 연구·시험 결과와 기술표준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음향 클럽에서는 소음 외에도 소리의 가진 이미지를 활용한 연구·교류(음풍경)도 진행된다. ‘음풍경(Soundscape)’은 장소의 특징과 분위기에 맞게 음을 디자인하는 일종의 학문 분야다. 대형 마트나 공공 기관, 공원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기분을 좋게 해 주는 음악이나 새소리 역시 음풍경과 관련이 있으며 클럽 내에서 이에 관한 많은 대화와 토론이 오가고 있다.

 

 

◆ 신에너지 분야 발전기 소음 저감·소음 지도 제작 등 국제 이슈와 보조 맞춰

 


▲ 정성수 음향클럽 회장

풍력발전기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전기 분야에서의 소음 특성은 국제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음향 분야의 핫이슈다. 특히 풍력발전기의 소음은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정성수 음향클럽 회장은 “아직까지 풍력발전기 소음에 관한 국내기준이 없는 상태여서 음향 클럽에서는 올해 국내에 국제 사례와 기준, 측정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고 올해 활동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전기 자동차의 경우는 소음은커녕 너무나 조용해서 행인이나 다른 운전자가 소리로는 운행 여부를 인식하기 쉽지 않다. 기존 자동차는 엔진이나 타이어 소음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차량의 접근 여부나 차량 이상을 파악하게 하는 일종의 수단이 될 수 있는 데 반해 전기 자동차는 이런 소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꾸로 전기자동차에 경보음을 부착하자는 제안이 나올 정도다. 다만 경보음을 어떤 종류의 소리로 어떤 각도에서 울리게 할 것인가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지역별 소음 규제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OECD 국가들은 지역별로 소음량을 측정해 지도에 표시한 소음 지도(Noise Map)을 제작해 회원국끼리 공유하고 있다. 이 지도는 특히 소음이 심한 지역에서의 자동차 운행속도 규제나 대형차의 야간 통행금지, 도심 우회도로 건설 등에 유용하고 환경측면에서의 소음 정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대규모 단지를 개발할 때 도로 디자인과 그에 따른 소음 예측에도 활용 가능하다. 음향 클럽에서는 올해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의 소음 지도 관련 작업에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

 

우리나라 소음·진동의 측정·분석·평가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생산되는 계측장비는 거의 없다. 또한 소음의 저감 기술도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동부간선도로의 사례에서처럼 방음벽 위쪽으로 넘어가는 소음, 뚫거나 회절해 들어가는 저주파 소음 저감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기술개발에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 회장은 “앞으로도 정부에서 저감기술개발에 R&D 자금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클럽에서도 이 부분에 좀 더 중점을 두고 기업의 기술개발을 돕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음 저감이나 차단기술 개발 못지않게 처음부터 소음 발생의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 회장은 “각종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도 성능을 내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소음을 줄이는 데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다”면서 “차단 기술 개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동차나 기계 등 자체에서 처음부터 소음을 적게 배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에너지 소비량을 표시하고 있는 현 제도와 마찬가지로 소음 표시제 품목을 점차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제품의 성능뿐만 아니라 저소음 여부도 같이 고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이제는 제품이 구동될 때 조용한 것도 경쟁력입니다. 저감 기술 개발을 유도하는 한 방편으로서 소음 마크를 제품에 부착하게 하는 방안도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음향과 진동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음향클럽에서는 아직까지 음향 쪽에 좀 더 중점을 두고 회원 간 교류와 협력을 진행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두 부분을 함께 다뤄나갈 예정이다.

 

정 회장은 “중소기업의 경우 소음 진동 관련 인력이 없는 경우도 많다”면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의 관련 고민을 저희 측정 클럽에 문의하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겠다”면서 많은 기업의 관심을 당부했다.

 

▲ 최근 소음 저감 분야에서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풍력발전기
▲ 음향 클럽 워크숍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