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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인사이드/생활과 측정

3월 최고기온 경신에 봄꽃들 앞다퉈 '만개'

 

 

그야말로 꽃 천지다. 연구원 정원은 물론이고 아파트 단지도 온통 봄꽃이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벌써 목련이 폈다’고 아우성이더니 어느새 ‘벌써 벚꽃이 만개했다’고 곳곳에서 감탄사다.

 

기상청이 당초 예보한 2014년 벚꽃 개화시기는 3월 27일 서귀포를 시작으로 남부지방 4월 1일~12일, 중부지방 4월 7일~11일에 이어 경기북부와 강원북부는 4월 10일 전후였다. 하지만 봄꽃들은 기상청 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3월 중순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3월 중순 목련이 인사하더니 개나리와 벚꽃도 3월 말부터 만개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꽃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자신의 의지로 이곳저곳 옮겨다닐 수 있는 동물과 달리 식물들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 일생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살면서 꽃을 피우고, 꽃이 지기를 반복한다. 식물의  개화시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밤과 낮의 길이 차이로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고,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한다. 기온은 식물의 생육속도와 연관된다.

 

식물의 잎에서 낮과 밤의 길이를 인지하는 물질은 '피토크롬'이다. 적색광을 감지하는 색소단백질이다. 청색광을 흡수하는 광수용체는 '크립토크롬'이다. 이들의 반응에 따라 단일(short-day)·장일(long-day)·중일(intermediate)·중성(day-neutral) 등 식물의 '광(光)주기성'이 결정된다.

 

이 '광주기성'이 꽃이 피는 계절을 정한다. 봄꽃은 낮이 길어짐에 따라 개화되는 만큼 '장일'식물에 해당한다. 국화와 코스모스 등 늦여름이나 가을에 피는 식물은 '단일'식물이다. 중일식물은 사탕수수와 콜레우스 등이 있고, 오이, 해바라기, 옥수수, 양파 등은 계절적 영향을 받지 않는 중성식물이다.

식물의 주기에 주야(晝夜)의 길이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면 온도는 생육속도와 관계된다. 식물도 생물(生物)인 만큼 여러 환경요인에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다. 분명 기온도 개화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한다. 휴면기를 지나 본격적인 생육을 시작할 때,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온도의 역할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봄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진 것을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해석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벚꽃 개화시기는 2월과 3월 기온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데 개화 직전 날씨 변화에 따라 다소 차이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월 평균기온을 바탕으로 개화시기를 예측하는데, 2~3월 평균기온은 1970년대 평균 2.87℃에서 2000년대 4.26℃로 1.39℃ 올라갔다. 무엇보다 벚꽃 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3월 25일 전후 기온은 역대 3월 최고를 기록했다. 전국의 낮 최고기온이 20℃에 육박했다. 높은 기온이 식물의 생육을 촉진해 개화시기를 앞당겼다는 분석이다.

 

간혹 늦가을 또는 초겨울에 봄꽃 한 송이기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봄에 가을꽃 한두 송이가 피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일 경우 지난해에 꽃과 잎을 형성하는 눈이 만들어진 뒤 휴면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겨울을 보낸 후 따뜻해지는 봄에 발아가 되는데, 이때 기온과 비슷한 때에 간혹 한두 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경우다. 가을에 피는 꽃은 휴면기를 거친 뒤 본격적으로 꽃눈이 형성되기 때문에 봄에 꽃을 피우는 일이 드물다.

 

봄꽃도 피는 순서가 있다. 우선 매화가 가장 먼저 곧 봄이 도래할 것을 알리고,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 부근인 제주도 서귀포 지역부터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이 순서대로 꽃을 피운다. 그런데 이상기온으로 꽃들의 ‘새치기’가 시작됐다. 올해에는 개나리보다 일주일가량 늦게 피는 진달래가 서울에서 개나리보다 이틀 먼저 폈다. 밤낮의 변화가 식물 개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긴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그만큼 큰 셈이다.

 

전국의 벚꽃축제는 변덕스러운 개화시기 때문에 해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몇 년 전에는 시기가 지났는데도 꽃이 피지 않아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치를 판이라고 볼멘소리가 나오더니 올해는 꽃이 너무 일찍 만개해 ‘벚꽃축제가 낙화(落花)축제’가 될 판이라고 걱정이다. 실제 국내 최대 벚꽃축제가 열리는 경남 진해는 기상청 예보대로라면 4월 1~12일 개화될 전망이었지만 이보다 1주일 앞당겨진 3월 24일 개화했다. 개화예상시기에 맞춰 벚꽃축제를 준비한 지자체들은 이제는 축제 기간까지 벚꽃이 지지 않기를 노심초사해야 하는 판이다.

 

봄이 되면 떠오르는 싯구 하나 있다. 황벽희운 선사의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으리'(不是一番寒徹骨/爭得梅花撲鼻香)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만큼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는 불교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추운 겨울을 이기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매화의 섭리도 담고 있다.

 

만약 지금 이 시가 지어졌다면 매화 대신 다른 꽃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봄은 봄이요 꽃은 꽃이다. 일찍 핀들 꽃이 아니고 무엇이며 늦게 핀들 또 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꽃이 모두 지기 전에 마음껏 보고 즐기고 느끼는 것 뿐. 변덕 심한 개화시기에 봄꽃을 감상하는 지혜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