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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인사이드/멤버 인터뷰

‘층간소음’ 해결사 정성수 박사 “들리지 않는 소음 잡아라”

 

 

“소음은 소득수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안들리던 소음도 들리게 되죠. 엄밀하게 말하면 잘 안들리는 소음까지 쾌적한 생활환경 차원에서 규제하고 잡아낸다는 뜻입니다. 실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면 저주파 소음에 대해 관심이 높아집니다.”

 

아파트 층간소음이 한 때 사회적 논란이 됐다. 불행한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층간소음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성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유동음향센터 박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층간소음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 규제가 강화되고 아파트 시공업체들의 인식 수준도 높아지면서 건설현장에서 층간소음을 최소화 하기 위한 다양한 자재나 시공법이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정밀한 측정기준이 있어야 한다. 정 박사는 연구원에서 다양한 소음원인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층간소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측정표준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층간소음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험실에서는 일정 기준 이하로 소음이 나오는데 현장에 적용하면 측정값이 달라지는 것이다. 정 박사는 그 원인을 결국 시공의 차이에서 찾는다.

 

“아파트 표준바닥구조도 만들고 예전에 보통 110~120mm이던 층간두께도 지금은 200mm까지 두꺼워졌습니다. 그런데도 층간소음 문제가 발생을 해요. 실험실에서는 모두 기준치보다 낮게 소음이 측정돼 ‘합격점’을 받은 자재들이거든요. 문제는 결국 시공을 사람이 한다는데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사기간이 비용과 직결되는 만큼 실험실에서 만큼 꼼꼼하게 할 수가 없거든요. 시공이나 마감 과정에서 아무래도 층간소음의 요인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아파트 층간소음의 법적기준도 만들어졌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에서 ‘공동주택 층간소음 기준에 관한 규칙’을 마련한 것이다. 이 규칙은 아파트나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에서 지켜야 할 생활소음의 최저기준을 담고 있다.

 

층간소음의 범위는 벽이나 바닥 등에 직접 충격을 가해 발생하는 ‘직접충격소음’, 텔레비전과 악기 등에서 발생해 공기를 타고 전파되는 ‘공기전달소음’으로 한정됐다. 기준치도 마련됐다. 직접충격소음의 경우 ‘1분 등가소음도’는 주간 43dB, 야간 38dB이며 ‘최고소음도’는 주간 57dB, 야간 52db로 정해졌다. 입법예고된 이 규칙은 5월 14일부터 시행된다.

 

이러한 기준이 마련되면서 정 박사도 더욱 바빠지게 됐다. 각종 소음측정기의 측정표준도 잡아줘야 하고, 바닥완충재나 바닥구조 등의 소음기준에 대한 업체들의 문의도 이따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음기준이 마련됐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래위층 분쟁이 생기면 소음측정 값과 원인 등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층간소음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이지만 정 박사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과학적 기준과 법적 잣대를 들이대도 층간소음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화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공동주택의 개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윗집도 아랫집도 가끔 공동주택에서 산다는 생각을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리고 ‘안면’이 정말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새로 이사를 오면 아파트 라인 전체를 돌며 인사도 하고 떡도 돌리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문화가 점차 사라져요. 거주의 문화도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집’이 아니라 잠시 살다가 떠나는 ‘빌린 집’이라는 개념이 강해요.”

 

 

층간소음 뿐 아니라 소음 문제의 상당수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들리지도 않고, 설사 들리더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누군가한테는 그 소리가 고통이 된다. 정 박사는 “저주파 소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남들은 모르는 자기만의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저주파 소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 박사는 ‘소음’을 찾아 전국 곳곳을 누볐다. 공장 공조기부터 운행중인 KTX, 고속버스, 지하철, 시내버스는 물론 지도에도 잘 나와 있지 않은 시골마을의 헬기장까지 소음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군사지역인 헬기장 소음을 측정하다 주민의 신고로 경찰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저주파 소음에 대한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불과 1dB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육교상판을 모두 교체합니다. 우리나라는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소음문제가 건강, 환경, 삶의 질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거에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