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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인사이드/고 이노베이션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메카 KAI를 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천 본사. 항공동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약 3만3000㎡로 축구장 4.5배 크기의 거대한 공장이지만 기둥도 없다. 보이는 것은 조립되고 있는 비행기와 헬리콥터, 그리고 작업대와 각종 부품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곳곳에서 기술자들이 비행기와 헬리콥터 동체에 올라 작업을 하고 있다. 공장이 너무 크다보니 사람의 모습이 눈에 잘 안띄었던 것이다.

 

 

축구장 4.5배 공장 규모에 저절로 탄성

 

"자동차와 달리 항공산업은 여전히 자동화 비율이 낮습니다. 사람 손이 많이 간다는 얘기죠. 첨단·고가 장비들이 많이 쓰이는 이유도 있지만 사람 손이 많이 가다보니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안내를 맡은 품질기획팀 시험교정직 윤상태 직장의 설명이다.

 

그는 다목적 경전투기 FA-50, 한국형 기동헬기(KUH-1) 수리온, 고등훈련기 T-50 등 항공동에서 조립되고 있는 제품을 하나씩 소개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기술로 이렇게 항공기를 직접 만들고 수출도 한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첨단 항공우주산업의 메카, KAI로 들어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대전에서 자동차로 2시간 40분여를 달린 끝에 KAI 본사에 도착했다. 미리 출입신청을 했지만 정문에서 다시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휴대폰과 심지어 자동차 블랙박스에도 보안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사진촬영을 위한 '각서'도 써야 했다. 위치를 알 수 있는 사진, 전체 공정을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금지.

 

출입절차는 이처럼 엄격하고 까다로웠지만 안내와 설명은 더 없이 친절했다. '보안규칙은 엄격하게 준수하되 손님은 최대한 친절하게 맞는다'는 보이지 않는 메뉴얼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안내를 받아 처음 들어간 항공동은 KAI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주로 군에서 사용되는 항공기와 헬리콥터 완제품이 조립된다. 이곳에서 생산된 T-50은 지난 2011년 인도네시아에 이어 지난해 이라크에 수출했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다목적 경공격기 FA-50은 지난 3월 필리핀으로 수출됐다.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도 단계별로 조립되고 있다. 자동화 과정과 복잡한 수작업 공정을 거쳐 1개월에 평균 3대 정도의 항공기 완제품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완제기 생산부터 민간·군수용 항공기 동체 제작까지

 

항공동을 나와 자리를 옮긴 곳은 조립동. 이곳에서는 완제기가 아니라 민간 항공기나 군수용 헬기의 일부 동체를 만든다. 2만9700㎡로 항공동보다는 약간 작지만 내부 시설이나 규모는 항공동 못지 않았다. 미군의 주력 공격용 헬기 '아파치'의 동체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또 에어버스 A350의 윙립(Wing Rib)도 여기서 제작된다. 좌우 날개의 갈비뼈 역할을 하는 윙립은 그동안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됐지만 KAI가 세계 최초로 자동화에 성공했다. 그 설비에만 1000억원이 투입됐다.

 

이동하기 위해 공장 바깥으로 나오니 생산된 항공기를 보관하고 수리하는 격납고가 보였다. 격납고에는 KAI에서 생산한 항공기의 점검과 성능 테스트, 성능 업그레이드를 위한 각종 작업이 진행중이다. 윤 직장은 "처음 항공기를 조립해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행하고 있는 항공기의 결함을 발견하고 성능을 높이는 작업도 상당히 중요하다"며 "여기서 일하는 기술자들은 처음 항공기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각종 점검과 시험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KAI 본사 부지는 100만㎡가 넘는다. 무려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에 달한다. 항공기 제조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동과 조립동, 격납고 등을 비롯해 부품동, 항공기 시험장, 페인트 부스, 연료 탱크 등 각종 시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건물 내부와 외부를 다니면서 눈에 띄는 것은 '청결함'이었다. 공장이나 시험장 등 내부 시설은 물론이고 항공기를 이동시키고 시험하는 그 넓은 외부 바닥에도 이물질을 찾기 어려웠다.

 

윤차렬 보안팀 과장은 "항공기의 최대의 적은 이물질"이라며 "작은 이물질 하나도 항공기에 중대한 결함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공장 내부는 물론이고 바깥도 청결을 유지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공기는 첨단 계측장비 집합체…측정기술이 품질 좌우

 

각종 시설을 돌아본 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표준교정실. 이곳은 각종 측정표준에서 통용되고 있는 기술을 항공기에 접목해 KAI에서 생산하는 각종 제품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온도, 고도, 기압, 속도, 길이, 각도, 질량, 무게, 압력, 토크 등 측정과 관련된 모든 실험을 수행하고 장비를 점검한다.

 

첨단기술과 부품의 총아인 항공기는 그야말로 각종 계측장비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장비가 정확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올 수 있고 성능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국내외 각종 표준기관들과 협력해 측정의 질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대덕의 정부출연연구기관, 특히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이곳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활동중인 측정클럽과도 지속적인 협력활동을 수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규태 전문기술원은 "항공기가 갈수록 첨단화되고 복합소재나 정밀한 전자부품들을 많이 사용하면서 측정기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최근에는 오히려 산업체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에서 더 적극적으로 기술보급에 앞장서고 있어 이러한 측정표준 기술의 수준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직장은 "항공기 산업의 경우 기업과 국가기관의 협력이 어느 분야보다 중요하다"며 "최근 표준연과 측정클럽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원들이 직접 회사를 방문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아이템을 논의하는 등 측정기술 분야에서는 협력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 항공기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갖추는데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KAI는 지난해 국내 방위산업 수출 사상 최대 규모인 11억3000만 달러 규모의 FA-50 수출을 성사시켰다. 또 FA-50 후속양산 1조2000억원, KUH-1(수리온) 2차 양산 1조7000억원 등 대형 수주를 잇달아 성사시키면서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인 약 6조1000억원을 신규로 수주했다. 매출액 역시 지난 2012년 1조5000억원에서 30% 성장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KAI는 지난 1999년 삼성, 현대, 대우 등 3개 대기업이 당시 각자 보유하고 있는 항공부문 사업을 통합해 설립됐다. 하성용 사장 취임 후 '2020년 연매출 10조원, 세계 15위권 항공기업 도약'이라는 중장기 전략을 수립했다. 세계 항공시장 점유을 5%를 목표로 한 것이다.

 

KAI는 그동안 기본훈련기 KT-1 77대와 T-50계열 고등훈련기 52대를 인도네시아, 터키, 페루, 이라크, 필리핀 등에 수출했다. 금액으로는 26억 달러 규모이다. 특히 T-50계열 고등훈련기는 미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미국수출 시 1000대 이상의 T-50계열 항공기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KT-1과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도 각각 200대, 300대의 추가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수부분에서는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체구조물 제작·납품 등의 사업을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우주발사체, 정지궤도 위성 등의 우주사업과 무인기 사업 등도 향후 주력 산업군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