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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인사이드/스페셜 토픽

오차를 잡아라!…천문과학 속 측정기술



 

오차를 잡아라!…천문과학 속 측정기술

광학·전파망원경에 들어있는 형상·시간 측정 기술


나노(NANO)는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로 과학뿐 아니라 산업과 생활 전반에까지 ‘나노’라는 말은 요즘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됐다.


바야흐로 나노시대를 살고 있는 셈인데, 10억분의 1에 해당하는 정밀한 소재들을 사용하는 시대이다 보니 그만큼 정밀 측정 기술은 우리 생활과 과학발전에 더없이 중요한 일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계기나 장치를 사용해 길이나 무게 따위를 재어서 정하는 것을 이르는 ‘측정’. 정밀과학분야에서 얼마나 오차를 줄여 정확한 측정을 하느냐는 연구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수많은 과학 분야에서 쓰이는 측정기술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가운데서 천문현상을 연구하는 천문과학 분야에 쓰이는 측정기술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한국천문연구원(원장 박필호)을 찾았다.


전파망원경 속 측정기술…“KVN은 측정기술 결정체”


우주 저편에서는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많은 빛들이 속삭이고 있다. 우주에서 오는 전파와 X-선도 그 중의 일부다.


빛은 파장의 길이에 따라 감마선, X-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전파 등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우리에게까지 도달하는 것은 가시광선과 전파뿐이다. 나머지는 대기에 있는 전자와 분자 입자들에 의해 흡수·반사돼 지상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가시광선은 파장의 길이가 400나노미터(1 ㎚=10- 9 m)에서 700나노미터로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을 말하며, 파장의 길이가 1 ㎜보다 긴 빛이 바로 전파이다. X-선은 파장의 길이가 10나노미터보다 짧고 0.01나노미터보다 긴 빛이다.


1932년 미국 벨 통신연구소의 연구원이던 ‘칼 잰스키’가 최초로 발견한 우주전파는 우리 은하의 중심부인 2만 5천 광년 거리에 있는 궁수자리(이후 궁수자리의 가장 밝은 전파원이라하여 궁수자리 A로 명명)로부터 오는 것이었는데, 이처럼 현대천문학에서의 여러 중요한 발견이 전파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우주 저편의 수많은 천체들을 얼마나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느냐는 천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봉원 천문연 천문우주사업본부 선임연구원은 “분해능을 높이기 위해 망원경의 크기를 무한정 크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기존 단일 전파망원경으로는 이 분해능 문제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대 이상의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천체에서 오는 전파신호를 서로 합성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멀리 떨어진 두 대 이상의 전파망원경이 수집한 전파신호를 합성하면 전파의 위상(phase)의 차이에 따라 간섭이 일어나고 마치 그 거리에 해당하는 크기의 초대형 망원경으로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손 선임연구원은 “거리가 수백 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전파망원경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케이블을 이용해 망원경끼리 직접 연결할 수 없기 때문에, 각 망원경에서 나온 신호를  저장하였다가 한 곳에 모아서 자료를 합성하게 된다. 이런 장치를 ‘초장기선 전파간섭계 (VLBI :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er)’라고 부르며, 서울과 울산, 제주에 있는 전파망원경의 전파신호를 이용한 우주 관측 시스템을 KVN(Korean VLBI Network)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KVN은 쉽게 말해 세 지역 망원경으로 우리나라 전체 크기만 한 가상의 거대 망원경을 만들어낸 다음, 각 지역에서 같은 시간대에 관측된 데이터를 서로 붙여서 하나의 완결된 데이터를 완성하는 우주 관측 시스템이다”고 덧붙였다.


▲ 서울과 울산, 제주에 있는 전파망원경의 모습

그에 따르면 세 지역 전파망원경에서 나오는 전파 신호를 합성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망원경의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한다. 시간의 차이가 있으면 각 망원경에서 측정한 전파의 결이 맞지 않아서 정확히 합성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억분의 1초 정도 작은 오차가 있다면 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한 위치측정에서 3 m가량 오차가 생긴다. 따라서 정확한 시간 측정은 필수다.


현재 천문연이 운영하고 있는 전파망원경은 서울의 연세대학교와 울산의 울산대학교, 서귀포의 제주국제대학교에 각각 위치해 있다. 이들 전파망원경에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수소 메이저 시계’가 설치돼 있다.


제도흥 천문연 핵심기술개발본부 선임연구원은 “관측동의 수소메이저실에 설치된 수소메이저 시계의 신호는 길이 100 m 정도의 케이블을 거쳐 전파망원경 안테나의 초점까지 전달된다. 전파망원경이 천체를 쫓을 때, 안테나의 고도와 방위각이 바뀜에 따라 케이블의 길이가 변한다. 또한 수신기가 설치된 방의 온도 변화, 외부 온도 변화 등에 의해서도 케이블의 길이가 변하며, 이는 전송되는 시계의 정밀도를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KVN에서는 아주 정밀한 시간 측정을 요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천문연과 표준연이 함께 머리를 맞댔다.


이원규 표준연 기반표준본부 시공간측정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수소 메이저 시계는 시간이 흘러가는 안정도가 10-13 정도로, 상용시계 가운데서 가장 좋은 시계다. 하지만 관측동에서 안테나까지의 거리가 100 m쯤 돼 도플러 현상에 의한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수소 메이저 시계 신호를 전파망원경 안테나 부분까지 가게 해야 하는데, 이 때 시계가 빨라지고 늦어지는 ‘도플러 현상’을 겪어 주파수가 변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도플러 효과 없이 신호를 보내기 위해 협력했다” 며 “시계 신호를 광섬유에 같이 실어 보내서 신호가 갔다가 돌아왔을 때 얼마만큼 길어졌는지를 판단했다. 신호가 길어졌으면 줄여주고, 늘어나면 줄여주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고 말했다.


▲ KVN Round Trip System

한편, KVN에는 천문연에서 자체 개발한 측정시스템이 들어있다. KVN에 속해 있는 3기의 전파망원경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22, 43, 86, 129 GHz 라는 네 가지 주파수를 하나의 망원경으로 동시에 볼 수 있도록 한 4채널 동시관측 밀리미터파용 전파망원경이다.


▲ 4개의 수신기를 통해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다.

이 망원경들에 설치된 4개 주파수 대역의 수신기에는, 매우 작은 우주전파를 관측하기 위해서 절대온도 4.5 K 나, 20 K 이하의 극저온에서 동작하는 초전도체 주파수혼합기, 저잡음증폭기 등이 사용된다. 이들 수신기 개발을 위해 액체 질소를 이용한 정밀 잡음 측정이나 위상 안정도 측정 등이 수행된다.


우주전파수신기는 극저온에서 동작하기 때문에, 상온 수신기에 비해 10 배 정도 낮은 잡음 특성을 보인다. 상온 수신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능동 잡음원(Noise source)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낮은 잡음을 측정하는 것은, 측정 오차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주전파수신기 개발에는 절대 온도 77 K인 액체질소에 담긴 전파흡수체와 상온 전파흡수체를 잡음원으로 사용하여 수신기 잡음 특성을 측정한다.


광학망원경 속 측정기술…“작은 장비 하나도 정밀 측정 위한 것”


천문연에서는 전파망원경뿐 아니라 광학망원경도 직접 제작하고 있다. 천문연 핵심기술개발본부의 나자경 박사의 연구동은 광학망원경을 만드는 장비로 가득하다.


나 박사는 “우리가 사용하는 측정기술은 응용·융합기술이다. 비구면을 포함한 광학부품의 형상을 나노수준으로 정밀 측정하는데, 이럴 때 측정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뿐 아니라 천문관측용 광학기기의 성능을 측정하고 평가할 때에도 정밀 측정기술을 요한다”며 “비구면 광학거울을 만들 때도 오목한 거울이라면 이 거울의 2차원적 형상이 얼마나 오목한 지 아주 정밀하게 측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비구면 광학거울의 형상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장비

소형 광학망원경을 제작하고 있는 나 박사의 연구동에는 간섭계를 비롯한 다양한 측정 장비들이 있다. 특히 간섭계는 내보냈던 빛이 광학거울에 반사돼 돌아올 때의 위상차를 가지고 광학거울의 성능을 정밀 측정하는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측정 장비다.


▲ 간섭계를 이용한 광학계의 정렬 및 성능 측정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정밀 장비와 부품들의 성능 실험을 위해 항온항습을 위한 장치가 돼 있는 실험실 내부는 광학망원경 제작에 쓰이는 부품과 평가 장비들이 초정밀도를 요하는 것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 박사는 “우리는 1 m 이하의 광학거울로 망원경을 만들고 있는데, 앞으로도 다양한 크기의 망원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측정기술을 사용할 것이다”고 말했다.


▲ 다양한 측정 장비들과 광학거울(사진 왼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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